Daily Drops

균열 사이로 터지고 흐르게 두라

raeiear 2025. 1. 11. 09:00

안 좋은 일이 갑자기 한꺼번에 터지고, 그 와중에 모든 것을 잠시 완벽히 잊고 다른 일에 온전히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그저 ‘일진이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역치(閾値)를 훌쩍 넘는 농도와 밀도로 사건들이 벌어진다.특히 그 사건이 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건드릴 때, 작은 크랙에서 시작된 균열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 정신과 감정은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겉으로는 우아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려 해도, 내면은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시도해 보았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기적처럼 편안해졌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기기의 오류로 인해 보고되지 않았던 상황 — 그로 인해 국제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모든 개인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계정을 전부 새로 설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백업 플랜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시도를 하고 나니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일단 몸을 추스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디바이스를 확인해 보니 그동안 보고되지 않았던 이슈들이 모두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그동안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 며칠 사이에 기기가 먹통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행히 국제 전화를 하지 않고도 모든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문제의 해결은 내가 억지로 힘을 주어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마치 썰물이 빠질 때 자연스럽게 물길이 열리듯 흐름 속에서 자연히 풀렸다는 것이다.

사실 별것 아닌 문제일 수 있었던 일이 다른 문제들과 겹치며 감정적으로 증폭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는 좀 더 근본적인 백업 플랜을 세우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sovereignty)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알게 모르게 어떠한 시스템에 의존해왔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만일의 상황 속에서 내가 어디까지 독립적일 수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자유롭게 흘러가는 자세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를 적자 마자 불과 2주 안에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었다.
어떤 상황은 하나의 작은 스텝이나 요인에 따라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큰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름대로 격렬했던 하루를 통해 배운 것은 이것이다. Don't push, let it flow. Collect every hidden gem along the way — especially when you hit rock bottom!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내 안의 균열이 벌어지면, 그것이 터져나오며 그저 흘러가기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