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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전히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를 듣는가?Daily Drops 2025. 1. 31. 18:00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국에서는 팟캐스트와 오디오북 시장이 상당히 크지만,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 포맷이 유튜브만큼 파급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않아, 이러한 오디오 기반 콘텐츠가 정보 전달의 주요 수단으로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오디오북을 약 7년 정도 들어왔는데,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과 함께 Audible에 가입한 이후였다. 팟캐스트는 유튜브를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많은 채널이 팟캐스트의 영상 버전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이를 계산하면 팟캐스트를 즐긴 지도 약 5년 정도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소음 환경이 오디오 콘텐츠 감상에 불리하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다양한 디바이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오디오를 집중해서 듣는 것은 상당히 피로한 일이었다. 도심의 소음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음량을 높이지 않으면 깨끗한 음원을 듣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피로도가 쌓인다.
시각적 경험과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눈을 감으면 시각 정보를 차단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스캔하며 선택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청각 정보는 차단하기가 훨씬 어렵다. 귓구멍을 막아도 먹먹한 소리가 남고, 완전히 소리를 차단하려면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다. MIT 공대에는 이런 특성을 실험할 수 있는 유명한 시설이 있는데, 지하에 위치한 진공에 가까운 밀실을 만들어 소음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공간이다. 그런데도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게 된다. 즉,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청각적 자극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환경적인 차이도 크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차지하는 공간이 넓고, 주택 거주자가 많아 차고에서 악기 연습을 하더라도 큰 제약 없이 가능하다. 또한, 미국인들의 대화 음량이 한국보다 크다는 점도 익숙한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이동 방식의 차이도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활발해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이용한 이동이 압도적으로 많다. 운전 중에는 시각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정보 습득 속도에서 텍스트가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는 점도 오디오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정보 습득이 목적이고 기본적인 읽기 능력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글을 읽는 것이 훨씬 빠르다. 반면, 영상이나 오디오북은 재생 속도를 따라가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린다.
특히, 책을 능숙하게 읽는 사람들은 내용을 훑어보거나, 깊이 생각하며 읽을 부분을 구분해 능동적으로 정보를 편집하면서 읽는다. 하지만 오디오북은 이러한 조절이 어렵고, 특정 내용을 다시 듣거나 스킵하는 과정도 번거롭다. 따라서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음악은 휴식이나 엔터테인먼트의 한 형태로 소비되며, 영상과 음원 포맷 역시 정보 습득보다는 유희적 성격이 강하다고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피로해서 책 읽기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오디오북을 찾는 사람이 적고,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팟캐스트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정보 전달 위주의 팟캐스트와 오디오북(각각 약 1시간 정도 길이)을 꾸준히 즐겨 듣는다. 왜일까? 단순히 미국에서 익숙해진 습관을 이어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환경 자체가 이미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 이를 오버라이드할 집중할 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원래 다양한 내용을 읽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쇼츠나 릴스처럼 가볍고 짧은 영상들은 앉거나 누워서 잠깐 쉬는 동안만 즐길 수 있다. 반면, 집에서는 스피커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는 것이 더 편안하다.
또한, 이동 중에는 깊이 있는 정보를 텍스트로 읽는 것이 어렵고, 집안일을 할 때도 책을 펼쳐 읽기가 불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길고 집중도 높은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는 나의 ‘intellectual hunger’를 채워주고, 동시에 귀를 편하게 집중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결국, 오디오 콘텐츠는 단순한 대체제가 아니라, 특정한 환경과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학습 및 정보 습득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Daily Drop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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