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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축Daily Drops 2025. 1. 10. 09:00
약 2시간 아주 작은 캔버스에 산뜻한 컬러를 품은 종이죽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니 만들었다.
마크 로스코는 크리틱들이 자신의 회화에 대해 색면추상회화라고 규정하는 것을 옳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표현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구체적이고 실재하는 '느낌(feeling)'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참여한 세션에는 보고 따라 그릴 수 있는 모델 그림들이 소개되었는데, 나는 언제나처럼 그저 한걸음 내딛으면서 그때의 나를 만나듯 바로 작업에 뛰어들었다. 밑그림 스케치 작업도 필요하지 않았고, 나는 그저 종이죽 덩어리가 그 시작이었다.
젓가락으로 준비된 파랑 종이죽을 짚어들고 턱 캔버스 위에 올렸다. 적당히 거칠고 적당히 포근하게 잘 깔아내다가 이 친구와 상승작용을 일으킬 다른 색을 골라 이어갔다. 그리고 또 다시 파랑, 또 다른 색, 또 다른 색... 덩어리를 펼치고 다지고 때로는 질감을 주고,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색 덩어리의 그 물리적 느낌들이 언어가 되어, 이 캔버스와 이 재료와 이 시공간에 어울리는 시각적 문법을 찾아나갔다. 물론 언제나 나의 무의식 세계에 머물고 있는 어떤 상이 꺼내져 나온다. 그것이 무엇인지 화면에 나타난 형상을 보고 나의 의식이 다시 확인하는 식이다.
어떻게 이러한 표현 방식을 나의 창작 화법처럼 발견하고 가꾸어오게 되었을까? 10여년 전만 해도, 마치 내가 그린 그림의 메시지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듯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새겨듣지 않았던 것 같다. 점점 화면에 나타난 형상들을 일종의 '진실'로 받아들이면서 이토록 역동적이고 보이는 현실 못지 않게 뚜렷하게 실재하는 나의 내면 세계가, 마치 겉모습보다 더 큰 (bigger on the inside) Tardis 같았다.
현실의 사물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실의 사물을 재현하는 구상적인 요소가 있는 그림에는 사물에 대한 '생각'이 담기고, 색과 질감이라는 요소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 보다는 그 사물의 형상을 받쳐주는 '분위기'나 '꾸밈'의 역할을 담당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인지 과정에서 형태가 지시하는 현실의 '그것'이라는 뜻이 훨씬 더 명확하고 인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로스코, 그리고 아마도 나 또한, 말이나 형태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형태 요소의 축을 약화시키고 색의 축과 질감의 축으로 시각적인 의미를 구축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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